Meet Our Member: Hyejin Kang
“스스로를 알아가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삶을 찾아 노력하는 아티스트” 강혜진 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혜진 님은 레이오프를 당하고 아티스트 일을 잠시 쉬는 동안 연기 수업과 모델 활동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셨다고 해요. 열정이 넘치는 혜진 님의 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Q. Integration Artist는 어떤 일을 하나요?
K. 7~8년 전부터 UX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포지션이 나온 것처럼, Game Integration Artist 역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새로운 포지션이예요. 이를테면 엔지니어와 아티스트의 중간 다리 역할이라고 할까요? 저는 3D integration artist인데, 3D 아트워크를 받아 게임엔진에 넣어 세팅하고, 약간의 문제가 있으면 고치기도 하고, 큰 수정이 필요하면 작업을 했던 아티스트에게 다시 넘기기도 하고, 파일 관리도 합니다.
Q. 예전에 2D/3D 아티스트로 일하신 건가요?
K. 인턴으로 일할 때 2D 콘셉트 아트, 게임 아이템과 그림 디자인, UI 등의 일을 했어요. 프로젝트가 바뀌면서 3D 모델링과 렌더링한 것을 게임에 넣는 작업도 하고요. 그때 포지션에 저를 뽑은 이유를 물었는데 스타트업인 회사에서 2D와 3D를 다 안다는 게 유리하게 작용했더라고요.
학교에 다닐 때는 영화에서 많이 활용되는 매트 페인팅(Matte painting)을 하고 싶었어요. 2D 콘셉트랑 3D가 들어가는 개념인데, 예를 들면 아바타 같은 영화 배경 같은 거요. 그런데 스타트업 게임회사에 들어가다 보니까 2D와 3D를 같이 하게 된 거죠.
Q. 한국에서 시각디자인 학부를 다니다가 미국 CG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서 학부를 다시 다니셨다고 했는데요. 한국과 미국의 디자인 교육이 많이 다른가요?
K. 학교마다 다르다고 해야 될 것 같아요. 한국에서 미대 입시를 할 때는 실기 시험 대비로 수능을 본 다음 아예 고시원으로 들어가서 3달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 미대입시 준비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안 봐도 외워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석고상을 계속 그렸어요. 한국 입시 준비는 정형화된 틀이 있었어요. 창의력이 많이 부족한 시스템이었죠. 약간 기계가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는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시각디자인보다는 3D 쪽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학부를 다시 다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cademy of Art라는 학교를 다녔는데, 이곳은 미술 기초, 창의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한두 개 클래스로 배웠던 누드화, 크로키, 등의 기본 과목은 물론, 그림뿐 아니라 미술 역사, 미술 이론, 조소, 미술해부학 등 기초 과목을 다양하고 깊게 배웠어요. 그때 그림을 참 많이 그렸고, 정말 재미있게 다녔습니다.
Q. 미국에 오면서 삶의 기준이 달라졌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달라졌나요?
K. 한국에서는 회사 이름이라던가 크레딧 타이틀, 이런 것들을 중시하는 편이었어요. 어떤 조직에 들어가거나 영화에 크레딧이 올라가면, 그게 성공인 줄 알았어요. 픽사에서 일한다, 이런 프로젝트를 했다… 이러면 “와~” 이러고. 솔직히 저도 이 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픽사나 디즈니나 조지 루카스 ILM에서 일한다고 했던 분들이 참여하셨던 워크숍이거든요.
VFX(Visual Effects) 분야가 재정적으로는 조금 힘든 것 같아요.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 기억하시죠? 그 영화는 상도 받았는데 막상 비주얼 이펙트 회사는 부도가 난 거예요. 그 업계의 열악한 환경을 대변해 주는 거죠. 게다가 이민자는 비자 문제라는 어려움이 추가로 있어요. 비자 때문에 일이 끊기지 않도록 계속 프로젝트를 구하느라고 급하게 다른 주로 가는 등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보았어요.
그런 걸 보면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만 고집하지 않고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게임 회사에서 인턴십을 제안했을 때 바로 수락했죠.
다행히 실리콘밸리나 남가주에 있는 게임 회사는 복지나 대우 비교적 좋은 편이라 밤을 새거나 주말에까지 나가서 일하는 일도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영화 쪽에서 게임 쪽으로 넘어오신 분도 많고요. 한국에서는 유명한 회사에서 일해야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워라밸이나 가정을 존중해주는 회사라던가, 조직 문화가 좋은 회사라던가 이런 걸 보기 시작한 거죠.
Q. 원래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K. 원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했고, 게임 자체를 플레이하는 것보다 게임 시네마틱스(cinematics)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파이널 판타지라는 게임에서 나온 시네마틱스가 너무 멋있어서 게임 쪽에서 일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Uncharted 라고 스토리 베이스 기반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게임인데, 앉아서 7시간 만에 다 클리어했어요. 일 때문이 아니라도 지금은 게임을 조금씩 즐기면서 하는 편이에요.
Q. 레이오프가 아무래도 좀 충격이었을 텐데… 괜찮으시다면 레이오프와 이후 구직 경험에 대해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K.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기는 워낙에 레이오프가 많기 때문에 쿨하게들 넘기기도 하는데, 저는 좀 힘들었어요. 첫 직장이었고 5년이나 일했거든요. 이곳은 합병이 많잖아요. 저도 합병 과정에서 레이오프가 됐어요. 처음에는 5년이나 일했으니까 이제 자유다! 나도 좀 쉬자, 이랬었는데 3개월 지나니까 죽겠더라고요.
제가 집안에 가만히 있는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레이오프 이후에 집에만 있고 좀 나태하게 지냈는데, 그러다가 우울증이 걸렸어요. 평소에 다른 워크숍이라던가 이직이 아니라도 인터뷰 준비를 좀 한다던가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한다던가 그런 일들을 좀 했어야 하는데, 이런 준비를 미리 안 했다 보니 바로 이직을 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UI 쪽을 준비할까 어쩔까 이렇게 암울하게 있다가 유일하게 들은 게 연기 수업이었어요.
Q. 연기 수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연기 수업은 어떠셨어요?
K. 제가 회사를 다닐 때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나 봐요. 레이오프 이후 제 탓을 많이 했어요. ‘내가 너무 말을 안 하고 조용히 있어서 그랬나, 영어를 못해서 그런 건가. 자신감있게 이야기하고 영어를 좀 잘 했으면 사람들이 나를 좀 더 좋게 봐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요. 그래서 영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커뮤니티 컬리지 야간 수업에 영어 수업이 없고 연기 클래스만 있는 거예요. 그렇게 시작했죠.
수업 첫 세션은 마치 명상이나 테라피 같았어요. ‘나 자신을 알자.’ 나를 알고, 나를 비우고 하얀 백지처럼 되어 캐릭터를 표현해야 한다. 이런 개념이었죠. 바닥에 있던 자존감이 낱낱이 드러나고 그걸 마주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사람들에게 눈 딱 감고 한 번 연기 수업 들어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연기도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잖아요. 처음 무대 위에 올라가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덜덜 떨었어요. 근데 그것도 계속 수업을 듣고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죠. ‘내가 이런 것도 하는 능력이 있구나.’ 이런 것도 깨닫고요. 수업을 2년, 3년 계속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나 뮤지컬을 해오던 친구들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제가 나이가 좀 많은 편이어서 또 조바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이 힘들지 계속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고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배우게 되었어요.
Q. 좋은 계기가 되셨겠네요.
K. 네. 연기 수업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목소리 연기(Voice acting)도 그렇고 즉흥 연기(improvisation)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다 들어야 될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를 잘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완벽주의 경향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걸 배우면 훨씬 더 유연해지고, 농담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 같아요. 너그러워진다고 해야 되나?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배우게 되거든요. 그래서 강추합니다. 꼭 한번 배워 보세요!
Q. 심플스텝스와의 인연이 궁금해요.
K. 심플스텝스는 작년에 알게 되었어요. 연기를 하다 배고픈 삶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다시 풀 타임 잡을 찾기로 마음 먹고 이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고민하면서 정보를 알아보다가 심플스텝스를 알게 됐죠. 그때 참가했던 심플스텝스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어요. 도연 님과 보경 님이 함께 해주셨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는 저와 비슷하게 이민자로서, 커리어 고민을 하는 한국 분들이 이렇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커리어 개발과 구직 준비에도 도움을 받았지만, 저는 종교 모임도 없고, 남편도 외국인이고, 가족도 떨어져 있다 보니 심플스텝스를 통해 한국 사람들과 연결되는 느낌이었고, 세상에 새롭게 소속감을 느껴서 너무 좋았어요.
또 심플스텝스 수업이 제가 하고 싶은 것들, 다른 프로젝트도 구체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Q. 다른 프로젝트들이라면, 프로필에 나와 있듯이 동물이나 환경 보호, 이런 것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쪽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K. 개와 고양이를 포함한 여러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남편도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에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동물 실험에 대해 알게 되고 여러 영상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가 Animal Rights Conference를 갔었는데 거기서 <Dominio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여러 영상을 보고 엄청 울었어요. 사람을 돕는 것도 좋지만 동물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요. 또 남편이 4년 전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는데 저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Q. 그럼 관련해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 게 있나요?
K. 제가 지금 한국에서 입양한 강아지를 셋 키우는데, 얼마 전에 기업가 정신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게 됐어요. 한국 강아지를 입양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봐도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도 좋고요. 개를 입양하는 미국의 웹사이트 디자인이 좀 별로예요. 거의 Craigslist 같고, 표로 돼 있고, 올드하거든요. 그래서 입양 홈페이지를 좀 예쁘게 만들거나 혹은 입양 서류 양식을 받아서 전달하는 일 같은 것을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Q. 혹시 지금 하고 계신 다른 프로젝트 이야기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K. 실리콘밸리 상공회의소와 한국의 여러 단체가 기획하고 있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을 위한 기업가 정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어요. 교육의 기회가 잘 안 주어지는 청소년들을 돕는다는 취지도 좋고, 저도 어렸을때 한국에서 막막했던 기억이 있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저는 포토샵을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게 처음이라 떨리고 준비할 게 많아서 약간 부담이긴 한데 잘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Q. 그 에너지가 다 어디서 나오나요?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K. 체력이 완전 꽝이예요. 제가 너무 외롭고 우울하게 지냈던 기간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과 있을 때 힘을 받는다는 걸 많이 느껴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제일 신이 나더라구요. 이건 사람마다 다르죠. 나만의 시간이나 공간이 필요한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야기하고 프로젝트도 하고 그러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요새 집에서 일하는 것도 전 솔직히 싫어요.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를 배워서 그런지도 모르는데 사람들과 직접 만났을 때의 그 에너지가 있잖아요. 작은 몸짓, 눈 깜박임, 뉘앙스, 조그만 톤 이런 것들은 언어가 아닐 뿐이지 그 자체들이 다 표현이잖아요. 그런 작은 것들을 포함해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받는 에너지를 좋아해요.
Q. 심플스텝스 다른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K. 도연 님과 보경 님이 해주셨던 프로그램에서도 말씀하셨는데… 항상 사람들 머릿속에는 스스로 누르는 게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특히 ‘난 충분치 않아.(I’m not good enough.)’라는 고정관념이 많은 것 같아요.
연기 수업을 할 때 선생님께서 “마음 속 괴물 소리를 듣지 마세요(Don’t listen to your green monster)!”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나는 연기를 못 해.’ 이런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얘기죠. 배우는 거절을 많이 당하잖아요. 오디션을 봐도 왜 떨어졌는지 안 알려줘요. 연기를 엄청 잘해도 역할에 잘 맞지 않으면 캐스팅이 안 되는 거고요. 그래서 배우들은 거절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많이 하거든요.
이렇게 거절에 익숙해지는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내가 인터뷰에 떨어지고 일자리를 못 잡은 이유가 타이밍이 어긋나서일 수도 있고, 그 역할에 내가 안 맞을 수도 있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이미 뽑혔을 수도 있고요. 옛날에는 이걸 다 제 탓으로 돌렸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솔직히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다독여 주겠어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해줘야 앞으로 더 잘 나아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보완하고요. 이력서를 보완한다던가, 인터뷰 질문에 최대한 대비를 하는 것 같이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고민해 봤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이렇게 말하는 저도 솔직히 아직 상처받긴 하는데 이제는 그렇게까지 머리 싸매고 그러지는 않아요. ㅎㅎ
여러분도 남의 눈, 남의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스스로 잘 도닥여주시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너무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엄청나게 잘난 사람이 아니어도, ‘나는 충분히 가치가 있고, 잘 하고 있어. 나 이만하면 괜찮아(I’m enough)!’ 이렇게 자신을 다독여주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Interview date: March 20, 2021
Written by Jiyoon Yoo